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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김정호는 백두산에 오르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는 불태워지지 않았다?

by 김무야호2 2024. 4. 11.

목차

    고산자 김정호는 백두산에 오르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는 불태워지지 않았다?

    역사의 진실을 쫓아서: 고산자 김정호의 실체

    세상에는 역사의 과거가 이제와 다르게 해석되고 재조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도 그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대동여지도에 대해 배울 때 이런 이야기를 배웁니다.

    고산자 김정호는 조선에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 싶어서 자비를 들여서 평생의 업적으로 "실측"으로 매우 정확한 축척의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지만, 외침에 시달리던 흥선대원군이 "지도가 너무나도 정확해서 적을 이롭게 하니 대동여지도는 불태워버리고 김정호는 죽여버려라"라고 해서 대동여지도는 불태워지고 김정호는 옥에 갖혀서 고생하다가 옥사했다는 것을 정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항상 하나의 면으로만 이해될 수 없습니다. 김정호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참 우리는 우매한 시대를 살아온 것 같습니다. 가르치면 가르친대로 무조건 외우고 배워서 그 것이 진리인양 믿고 살고 있습니다. 과연 조선시대에 일개 평민이 조선팔도를 발로 걸어 다니면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했을까요?

    그런데, 아쉽게도 김정호는 개인적으로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정호의 호는 고산자(古山子)로 재주가 특출난 인물로 여지학(輿地學:지리학)에 열중하여 두루 찾아보고 수집해서 지구도(地球圖)를 제작하였고, 또 대동여지도를 손수 판각하여 세상에 인포 했다. 이런 점에서 김정호의 역사적 위치가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김정호의 생몰연도에 대한 기록조차 없어서 그가 지리서를 발간한 연도로 대략 미루어 짐작하기를 1804년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1866년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죠.

    그렇게 김정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는데, 김정호라는 인물을 위인의 반열에 끌어낸 사람이 "친일파" 육당 최남선이라는 인간이에요. 그가 주로 행했던 행적은 일제의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일본을 찬양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김정호를 역사의 인물로 끄집어내었을 때 오롯이 순수한 의도로 김정호를 기술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김정호가 백두산에 오른 횟수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습니다. 한마디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김정호가 딱히 전국을 실측하면서 돌아다니지 않았다고 반박할 근거도 없습니다. 돌아다녔다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증명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추측과 가설들 뿐인 김정호의 업적인데요.

    한편, 대동여지도가 김정호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축지 학자인 성남 해라는 분이 대한 측량협회 기관지인 측량 제59호(2001년 11월호)에 '대동여지도 연구의 제문제'라는 연재에서 지적한 내용인데요. 타당성 있는 근거로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표지에 山子校刊(고산자교 간)이라고 쓰여 있는데, 교간은 '교정을 보아 간행하다'라는 뜻이므로, 김정호가 '저작'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도제작은 현대사회에서도 개인이 할 수 없는 국가사업이라는 주장이지요.

    결론적으로, 고산자 김정호의 업적과 인물성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확한 역할과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증거와 해석이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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